[책리뷰] 통 속의 영생, 그것은 진화인가 박제인가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 레이 커즈와일)
1. 데이터의 홍수 속에 가려진 '상업적 갈증'
20년 만에 돌아온 미래학의 거물, 레이 커즈와일은 여전히 확신에 차 있다. 그는 수많은 통계와 그래프를 들이밀며 우리가 기하급수적 성장의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증명하려 애쓴다. 하지만 독자로서 느끼는 감상은 '경이로움'보다는 '피로함'에 가깝다. 전작의 논리를 반복하며 최신 데이터를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방대한 분량은, 인류의 미래를 제시하려는 순수한 열망보다는 자신의 예언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려는 노장의 집착, 혹은 전작의 명성에 기대어 성공을 거두려는 상업적 의도가 많이 보여진다.
2. '결핍'이 사라진 100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가
저자는 수명 연장의 3단계를 통해 인류가 노화와 질병을 정복할 것이라 단언한다. 하지만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모든 것이 충족되고 부족함이 없는 100년 이상의 삶이 과연 축복일까? 인간의 뇌는 결핍을 채우고 한계를 극복하는 '변화의 순간'에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80년대 일본의 애니매이션 '은하철도999'에서 주인공 철이는 영원히 고통없는 기계인간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기계가 되어 영생을 얻었지만 삶의 의미, 행복, 그리고 또다른 지배자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 존재들을 목도하면서 철이는 기계인간이 되기를 포기한다.
고통도, 죽음의 공포도 사라진 채 완벽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그저 '산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마감 기한(죽음)이 없는 삶에서 열정은 희석되고, 모든 성취는 무의미한 반복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저자가 약속하는 풍요의 시대는 어쩌면 '거대한 권태의 시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3. 클라우드 권력과 '관리자'의 탄생
책은 모든 이가 일할 필요가 없는 유토피아를 그리지만,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인프라의 소유권'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클라우드와 나노 기술을 운영하는 극소수의 기술 엘리트가 등장한다면, 세상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아닌, '관리자'와 '사용자'로 나뉘게 될 것이다.
이때 관리자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자원의 독점인가, 아니면 대중을 안전이라는 명목하에 '디지털 통' 속에 가두어 두는 통제인가? 인류의 지능이 클라우드에 업로드되어 신적 지위에 오른다면, 그들은 더 이상 인간적인 가치나 존경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거대한 연산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데이터 조각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4. 진화의 이탈: 인류는 박물관으로 가는가
가장 소름 돋는 지점은 '진화의 주도권 상실'이다. 인류가 스스로를 무기적인 틀(클라우드) 속에 가두고 안정을 택하는 순간, 생물학적 진화의 고리는 끊어진다. 우리가 가상 현실이라는 '디지털 박물관'에서 영생을 누리는 동안, 지구의 물리적 세계에서는 또 다른 종(문어나 영장류 등)이 인류가 비워둔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며 진화의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결국 인류는 우주의 장구한 진화 역사에서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고, 스스로를 박제한 채 과거의 영광을 시뮬레이션하는 '퇴화한 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역설을 생각해 볼수도 있다.
결국,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이 가져올 '방법'에 대해서는 정교한 지도를 그렸지만, 그 길 끝에 서 있을 인간이 느껴야 할 '의미'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했다. 이 책은 기술적 가능성을 확인하기엔 충분하지만,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오래, 완벽하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빈곤함을 드러낸다. 진정한 특이점은 기술이 인간을 앞지르는 순간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통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에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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